Category: Christian Perspectives in the 21st Century / 21세기 크리스천의 관점

나의 데오빌로들에게

누가는 누가복음을 여는 프롤로그인 1:1-4를 통하여 저술의 내용과 방식과 목적을 밝히고 있다.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다 (1:1). 우리말 번역은 “사실”이라고 했지만 보다 적절한 번역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의 내용을 이루는 이 사건들은 아마도 누가복음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인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계획들이 어떻게 성취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조금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예수의 이야기” 혹은 “복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누가는 이 내용을 중심으로 데오빌로라는 수신자에게 자신의 복음서를 헌정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는 자신의 저술이 결코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이미 이전에 존재하고 있던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저술하고 있다고 밝힌다. 처음부터 목격자였던 자들 (아마도 제자들을 포함한 예수님을 직접 본 자들)과 말씀의 일꾼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의 내력에 바탕을 두어 저술되었던 여러 자료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것은 구전의 형태로, 어떤 것은 문서의 형태로 누가 앞에 있었을 것이고, 누가는 그 모든 자료들을 가능한한 세밀하고 정확하게 자세히 근원부터 살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차례대로” 자신의 저술을 시작한다. “차례대로”라는 말은 반드시 시간의 순서라는 의미보다는 자신의 저술의 목적에 맞게 여러 사건들/에피소드들을 배열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어느 한 사건이 먼저 기록되었다고 하여 반드시 뒤에 따라오는 사건들보다 먼저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쓸 때 꼭 시간의 순서를 맞추기만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제 누가는 수신자를 밝히는데 그는 바로 데오빌로라는 사람이다. 데오빌로의 뜻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인데 아마도 누가의 저술을 후원하는 로마의 고위관료로 생각된다. 누가는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고 누가복음을 쓴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또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떻게 더 큰 확신으로 독자인 데오빌로에게 다가 올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서 “이루어진”이라는 표현을 주목할 때 뚜렷해진다. “이루어진”이라는 동사의 시제는 완료시제로 이는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끝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누가가 들려주는 예수의 이야기는 더 이상 과거에 일어나서 “아 그냥 성취되었구나”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데오빌로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로,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면서 때로는 아니 많은 경우에 예수의 이야기가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무미건조하게 대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말씀은 그저 문자처럼 기록된 글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그저 연구의 대상일 때도 있고, 설교의 준비를 위한 수단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예수의 이야기는 그렇게 말라 버린 문자가 아니라 오늘도 나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누가의 일갈은 다시금 나를 돌아보아 찌르는 하나님의 송곳이 됨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처럼 그 말씀이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부딪칠 때, 살아 역사하는 역동성 있는 이야기가 될 때, 그럼으로 그 이야기가 나의 삶이 될 때 더 큰 확신으로 소망으로 지금 딛고 있는 현재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과거에만 묻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동력이 되는 것이 예수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를 나 자신이 잘 들을 뿐 아니라 그 이야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더 잘 들려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역시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이 데오빌로가 되는 것 뿐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오빌로가 되어 더 큰 확신과 소망과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은 누가의 꿈인 동시에 나의 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꿈은 하나님의 꿈일 것이다.

“홍승민 교수는 현재 센트럴신학대학원 신약 분과장으로, 또한 필라델피아 근교의 브니엘 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 (누가복음)으로 박사학위를 마쳤으며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