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Christian Perspectives in the 21st Century / 21세기 크리스천의 관점
익숙한 감옥에서 벗어나기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셉니다. 학사 일정이나 절기, 전통 그리고 신앙의 달력에 따라 우리의 삶은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흐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이 순간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깨달을 때,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은 삶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삶에는 반드시 ‘전환의 시기’가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 전환점을 미리 예견하고 의식적으로 준비하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뜻밖의 상황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지나가는 모습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이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지만, 어떤 이는 두려움에 떨며 한걸음도 떼지 못하거나 심지어 뒤돌아가려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자유를 향해 나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또 어떤 이들은 뒤를 돌아보며 익숙한 과거에 머무르고자 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을 때 우리는 흔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 되어 믿음으로 행진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실제 성경 기록은 훨씬 복잡하고 현실적입니다. 바로의 군대가 그들을 추격해 오자, 이스라엘 백성은 깊은 공포에 휩싸여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출 14:10). 두려움은 곧 불평과 원망으로 나타났고,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출 14:11)라며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지만, 눈앞에 닥친 절망과 미지의 상황 앞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오랜 노예 생활이 만들어 낸 굳어진 사고방식과 두려움이 더 깊은 장애물이었습니다. 애굽은 고통스러운 곳이었지만, 그곳은 그들에게 익숙한 감옥이었고, 익숙함은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자유라는 낯선 세계는 불확실함과 불안을 동반했고, 그 낯섦은 곧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그들은 미지의 미래를 택하기보다 익숙한 속박에 머무르기를 선택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보다, 알던 감옥에 남아있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합니다. 우리 역시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마치 막다른 길에 선 것처럼 느낄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도, 다시 과거의 습관과 불신으로 되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예측 가능한 삶을 선호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과거의 익숙한 틀 안에 머무르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안전장치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단순히 머리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입니다. 바다가 갈라지기 전에도 먼저 발을 내딛는 용기이며, 익숙한 순환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결단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잡기 어렵고,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숨이 막힐 때 비로소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듯, 믿음도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로막은 것은 바다가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몸은 이미 애굽을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삶을 떠났다고 생각하지만, 죄와 두려움, 안일함의 습관은 여전히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려는 마음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바다 앞에 서 있는 순간, 믿음은 현실이 됩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도 없을 때, 하나님은 기적처럼 길을 열어주십니다. 인간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 가시며, 막막하고 어두운 순간에 가장 밝은 빛을 비추십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바다가 가로막혀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이미 애굽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여기까지 당신을 인도하신 분이며,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길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은 새로운 시작의 문턱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막다른 길이 아니라, 믿음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일 뿐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길은 외롭고 두렵지만, 언제나 앞을 향한 길입니다. 바다가 갈라지는 순간은 우리가 믿음으로 첫 발을 내딛는 바로 그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분명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보다 앞서가시며, 길 없는 곳에 길을 내고 계셨다는 사실을. 우리의 믿음은 그분이 예비하신 길 위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며, 그 길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먼저 준비하신 길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두려움과 불확실함 사이를 오가지만, 바로 그 순간들이 믿음의 문을 열어주는 중요한 시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익숙한 감옥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그 발걸음마다 하나님은 함께하시며, 우리를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원고의 내용은 전적으로 저자의 것입니다.
저자. 방승호 교수: 센트럴 신학대학원 구약 조교수 및 현장학습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