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Christian Perspectives in the 21st Century / 21세기 크리스천의 관점
나의 유학 시절에 만난 네 분의 은사
나는 고신대학,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3년간 군목으로 봉사했다. 그런 다음 198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의 미국 유학 시절은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는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Calvin Theological Seminary,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던 1982-1986년까지를 가리키며, 후기는 University of Denver와 Iliff School of Thelogy에서 공부하였던 1989-1993년을 지칭한다. 이 기간에 나는 평생 잊지 못할 네 분의 훌륭한 은사를 만났다. 네 분의 은사는 나의 석사와 박사 논문을 지도하였던 Reformed의 Simon J. Kistmaker 교수, Calvin의 Andrew J. Bandstra 교수, Princeton의 Christian J. Beker 교수, Iliff의 Edward H. Everding 교수이다.
나의 첫 유학 생활에 만난 Kistmaker 교수는 나에게 올바르게 학문하는 방법을 깨우쳐주었다. 이분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학문한다는 것은 그저 뛰어난 학자들의 학설을 배우고 모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리포트를 쓸 때마다 세계적인 권위자로 알려진 학자들의 주장을 끌어 모아 모자이크를 만들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Kistmaker 교수는 모자이크된 나의 리포트 곳곳에 빨간 줄을 그은 다음 제일 마지막 장에 큰 글자로 “자네 생각은 무엇인가?”(What is your idea!)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남의 것을 모방하거나 빌려오기 전에 내 생각을 우선적으로 제시하려고 힘쓰게 되었다.
Calvin에서 만난 Bandstra 교수는 나에게 신약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종말론적인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었다.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어떻게 나와 온 인류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전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는 우주적인 종말론적 사건이 되는가를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였다. 그런데 Bandstra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의 마지막 때에 온 인류와 온 세상을 대표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래서 그의 죽음과 부활은 단순히 개인의 죽음과 부활이 아닌 인류와 온 세상의 심판과 회복을 대변하는 종말론적인 구원사건임을 밝혀 나의 궁금점을 해소하여 주었다.
Princeton에서 만난 Beker 교수는 나에게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성경이 가지고 있는 계시적인 통일성(Coherence)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상황성(Contingency)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사실 당시 세계 신학계는 성경의 계시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역사적 상황성을 등한시하였고, 역사적 상황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성경의 계시적 통일성을 등한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Beker 교수는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역사적 상황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결코 소홀하게 취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내가 성경을 대할 때마다 성경의 상황성에서 통일성을, 통일성에서 상황성을 찾게 된 것은 전적으로 Beker 교수의 은덕이라고 할 수 있다.
Denver대학원에서 만난 Everding 교수는 나에게 학문은 물론 참된 교수의 모델을 보여주신 분이다. 그는 나로 신약성경의 문학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하였다.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성경의 저자들이 탁월한 문학가이며, 그들이 성경을 저술할 때 수사학을 포함하여 교차대구법, 평행법, 반어법 등 다양한 문학적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분을 통해 성경 저자들이 활용하고 있는 다양한 문학적 기법을 깨닫게 되자 성경 본문을 더 깊게 그리고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갈라디아서를 수사학으로, 마태복음을 드라마로, 로마서를 내러티브로 보고 책을 출판하게 된 것은 그분 때문이다. Everding 교수는 또한 제자들을 끝까지 아끼고 사랑하여야 할 참된 교수상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는 그에게 있어 나는 마지막 박사 논문지도 학생이었다. 은퇴를 목전에 두면서도 그는 최선을 다해 나의 논문을 지도하였음은 물론 은퇴하면서 자신의 Harvard 대학교 시절부터 간직하였던 연구실의 모든 책을 나에게 물려주셨다. 나는 그 책을 받자마자 개인이 소장하기가 너무 송구스러워 모든 책을 당시 내가 교수로 있던 서울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미국 유학 생활에 만난 이 네 분 교수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분들이 없었다고 한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내가 목사로서, 교수로서, 그리고 저술가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이 분들의 고매한 학문과 인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종종 이분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처럼, 나도 우리 학생들에게 그들의 내일을 있게 하는 좋은 선생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
*이 원고의 내용은 전적으로 저자의 것입니다.
최갑종 교수
센트럴신학대학원 신약학교수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