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전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코비드-19 판데믹이 그나마 나에게 가져다 준 일상의 자그마한 변화는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 아내와 둘이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사실 아내와 나는 넷플릭스 취향이 무척이나 다르기는 하지만 함께 즐겁게 보는 장르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음식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이다. 최근 “심야식당”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함께 보았다. 이 드라마는 본래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드라마인데 2009년 시즌 1을 시작으로 방영되기 시작해서 시즌 3를 마친 후 다시 “심야식당: 도쿄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2019년에 시즌 4, 5를 방영하였다. 매 에피소드가 25분 내외라 보기에도 지루하지 않았기에 더 재미있게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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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잠드는 시간인 자정 즉 밤 12시부터 오전 7시까지 영업하는 특이한 식당이다. 많은 이들이 찾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마스터 (master)라 불리는 심야식당 주인의 확신에 찬 독백처럼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식당의 단골이 된다. 이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트렌스젠더인 술집 사장, 스트립 댄서, 가족 하나 없이 은퇴하여 갈 곳 없어 이 식당의 단골들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늙은 아저씨, 야쿠자 두목과 그 부하, 결혼하고 싶지만 결혼하지 못하고 늘 이 곳에서 모이는 노처녀 세 명 등 사회에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아니 도리어 멸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이 집을 매일 찾는 단골이다. 이들 외에 독특하고도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매 회의 주인공 혹은 주인공들로 등장한다.

심야식당이 단골들을 계속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이든 재료만 있다면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너무나 만들기 쉬워 집에서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무척이나 낯선 음식이라 다른 사람들이 처음 들어보았거나 겨우 들어보기만 한 음식마저도 마스터는 그들의 입맛에 맞게 척척 만들어낸다. 어떤 이는 막 한 밥 위에 버터를 녹여 간장을 뿌려 먹는 버터밥을, 어떤 이는 우리가 어려서 먹었던 비엔나 소시지를 문어 모양으로 만들어 굽는 요리를, 어떤 이는 카레 라면을, 어떤 이는 감자 셀러드를, 또 어떤 이는 오므라이스를 주문한다. 매 회마다 등장하는 각종 음식들은 사실 요리라고까지 부르기도 어려운 일상의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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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이 주문하여 먹는 음식들에는 그들의 삶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여러 사연들이 존재한다. 바로 그 사연들이 그들이 주문한 음식과 어우려져 “심야식당”을 이끌어가는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매 회 주인공들이 주문하는 음식들이 바로 그들의  소울 푸드이기 때문이다.

소울 푸드란 한 입 먹으면 내가 비로소 집에 왔다는 안도감과 기쁨을 주는 그런 음식이다. 한 입 먹으면 왠지 웃음이 지어지는 그런 음식,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 지는 그런 음식이다. 그래서 “심야식당”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대대로 이어지는 교사 집안에서 야쿠자의 길을 선택한 아들이 어머니를 뵐 낯이 없어서 음식으로 그 그리움을 대신한 소울 푸드였고, 수 십년간 연락하지 않고 아들을 버렸던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이어주는 소울 푸드였으며, 일본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미식 전문가가 어려서 먹던 추억의 음식이었고, 서먹했던 두 친구의 우정을 몇 십 년 만에 이어주는 끈끈한 소울 푸드였다. 이들의 삶과 사연들 속에 그 음식들은 추억이고 기쁨이고 슬픔이며 때로는 미소 짓게 하는 고향의 맛, 엄마의 맛, 아빠의 정, 형제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우정과 사랑이었던 것이다. 마스터는 이들의 사연을 묵묵히 들으면서 그 기억 속에 존재했던 소울 푸드를 추억과 함께 현실에서 맛보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드라마 내내 말 없이 주문하는 음식을 훌륭히 만들어 내어 상처 입은 이들을 음식으로 위로해 주는 마스터는 이 드라마의 멋진 주인공이다. 이 마스터를 중심으로 좁디 좁은 심야식당 안의 사람들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슬퍼하며, 함께 살아간다. “심야식당” 모든 에피소드를 아내와 함께 그야말로 정주행하면서 이들의 스토리와 음식이 너무나 맛있게 그리고 멋있게 표현되어서 “심야식당”에 나오는 음식들 몇 가지를 아내와 함께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내가 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맛이 있었다. 이야기와 함께 음식을 먹는 기분이 퍽 남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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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이 주는 특별한 감동은 사회에서 무척이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참 가난하고 어쩌면 누군가를 도울 수도 없는 소외된 이들이 심야 식당 안에서 다른 평범한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 지으며, 힘을 모아 그들을 돕기도 하고, 마침내 복잡하게 얽히고 섥혔던 일들이 해결되면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한다. 심야식당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소울 푸드를 함께 먹으며 은은한 위로를 나눈다. 평범함과 평범하지 않음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곳이 심야식당이다.

“심야식당”을 보면서 교회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언젠가부터 교회는 문턱이 높아진 곳이 되어버렸다. 우리 주변에서 소외되고 발 붙일 곳이 없는 자들이 모여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그들의 인생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참 위로를 받아야 하는 심야식당이 아니라 뭔가 드레스 코드가 필요한 곳, 격식과 예의가 차려져야 하는 곳, 따뜻함보다 정확함이 필요한 곳이 되어 버렸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 소울 푸드를 나누며 인생의 고단함과 추억을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라 패스트푸드 체인점처럼 얼른 먹고 금새 일어서야 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다. 소울 푸드를 먹으며 삶의 고됨을 말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도리어 들어야 할 것들을 일러주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심야식당”의 마스터가 소외되고 별 볼일 없는 단골들과 손님들의 사연을 들어주며 음식으로 그들을 위로해 주는 모습은 오늘날 교회에서 낯선 모습이 된 것이다.

사실 교회는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서로가 짐을 함께 지는 곳이다 (갈 3:28; 6:2). 그 곳은 성별과 나이, 계급과 계층 그리고 어떤 구별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가장 평범한 자들이 모여 평범하지 않은 자들을 품어주고 사랑하고 위로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소외되어 평범하지 않았던 주변부의 사람들을 품어 주신 예수를 통하여 만들어진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회의 단골로 부름 받은 자들이 교회를 찾아온 이들의 아픔과 사연을 들어주며 함께 삶을 나누어 가는 곳이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소울 푸드의 추억을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장 그리워 하는 추억의 빈 공간을 참 소울 푸드인 예수로 채워줘야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예수를 먹고 소유하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는 심야식당이어야 한다. 말없이 사연을 들어주며 소울 푸드로 참 위로를 전해주는 마스터가 우리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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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소울 푸드는 무엇일까 생각하니 쉽게 답이 떠오른다. 부대찌개였다. 수련회에서 돌아올 때, 여행을 다녀온 후에 이 음식을 먹으며 우리 가족 넷은 웃고 울고 떠들고 치유된다. 꼭 심야식당에 가지 않아도 된다. 주님은 그런 우리를 항상 말없이 지켜보시며 슬그머니 웃으시기에 그렇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부대찌개를 먹어야겠다.

홍승민교수는 현재 센트럴신학대학원 신약 분과장으로, 또한 필라델피아 근교의 브니엘 교회 설교목사로 섬기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 (누가복음)으로 박사학위를 마쳤으며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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