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가까스로 회복된 나의 몸이 한국에 돌아와 다시 심한 오열을 앓았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타는 듯이 아픈 식도를 넘기지 못해 김치물과 미음으로 연명하기 보름이 넘었다. 그러던 그날은 아마도 생의 마지막 날인 것 같았다. 남편도 유치원생 딸의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무엇보다 성전에서 기도하다 죽는 것이 좋겠다 싶어 새벽 4시에 교회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스러져 가는 기운을 모아 기도를 드리다 주님 품에 안기리라 생각하며… 이 정효 교수님께서 이런 나를 보시고 흠칫 놀라 아드님 김종윤 전도사님을 보내 병원에 실어 주셨다. 식도 염과 위염에 간염 수치가 천을 넘도록 급상승했다는 진단을 받기까지 온갖 일그러진 형상의 환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홀로 기다리던 긴긴 시간, 그리고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옮겨 병실에 입원하는 그 시간까지는 반나절에 불과했지만 매 순간 바늘로 온 몸을 찌르듯, 앉아 있는 것마저 고통스러웠다. 마침내 8인실 하나를 얻었고 링겔 주사 네 대를 양 팔에 꽂은 채 일 주일간의 깊은 잠에 빠졌다. 잠과 죽음이 어떻게 다른가?

한 주간이 지나자 음료를 마시고 고형 음식도 먹기 시작했다. 한 주 더 지나 정상적으로 음식을 먹고 힘을 더했다. 힘이 나니 주변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환자는 잠을 잘 안 자고 눈 떠서 눈 감기까지 허스키 보이스로 병실을 흔들며 복도까지 울리도록 쉴 새 없이 떠드는 간염 환자였다. “아이 속상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직도 수치가 하나도 안 내려 갔어! 이 딸 년은 어디 간 거야? 핑계도 많아.” 예로부터 성질 나쁜 사람을 간이 부었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 누구도 무어라 나무라지 않았다. 모두 가만히 그녀를 지켜본다. 병치레하는 자신의 신세를 아직은 멀쩡한 입으로 하소연하는가 보다. 당뇨로 고생하는 환자를 보면 그래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신세가 낳아 보였다. 과자 한 봉을 숨겨두고 먹다 들켜 가족의 질책을 받는 할아버지 모습을 보니 참 안스러웠다. 신장 수술한 환자에게 방귀는 수술의 성공 신호였다. 방귀가 나오기까지 소변과 피를 담는 두 개의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복도를 오가는 운동을 거듭했다. 어슬렁 어슬렁 움직이는 것이 운동인지 모르지만 그로서는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복도 한편에 자살을 시도한 16세 소년이 소리를 내지른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사복 경찰이 감시를 서는 가운데 입원한 전과범 환자도 있었다. 그는 호사스럽게 독방을 차지했다. 8인실의 우리 환우들은 같은 기수에 입대한 병사들처럼 모종의 연민을 안고 서로의 병세를 지켜보았다.

이런 병원 입원의 경험이 내게 대학 입학의 감격보다 더 강렬하고 더 자랑스러움은 그 당시 꿀 송이 보다 더 달고 보배로운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입원 중 병실에서 슬며시 나와 몇 계단 위의 복도 한구석에서 성경을 읽곤 했다. 치열한 실존의 현장, 이 복잡한 병원에서 찾을 수 있는 최고로 평화로운 장소였다. 창세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시편, 요한 복음, 로마서, 계시록 … 죽음의 깊은 강을 건넌 내게 그전 수없이 읽었던 성경 말씀은 이제 갓 입학한 학생이 펼친 새 교과서처럼 마냥 새롭고, 열린 페이지마다 꿈틀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으며, 총천연색 드라마로 내 영혼을 진동시키는 울림이었다. 그 시간이 형언할 수 없이 소중했기에 사람은 모름지기 가끔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모든 것을 상실한 마음은 가난해지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을 얻기에 좋은 밭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모쪼록 가난해진 마음은 영생의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일 황금의 기회이니 가난도 고난도 말씀 안에 있으면 축복이다. 한 달이 지나 몸이 급속도로 호전되었다. 의사가 소견을 주었다. “이제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미국에 공부하러 가도 되나요?” 지금 상황으로는 문제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또 이렇게 간 수치가 올라가면 그 때는 죽습니다”

William Blake (1757–1827), Jacob’s Ladder, or Jacob’s Dream (1799-1806), pen and grey ink and watercolour on paper, 39.8 x 30.6 cm, The British Museum, London. Courtesy of and ©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왔다. 학위를 마치고 이민 목회 20년이 흘렀다. 공부 중 간염 수치가 천을 넘어 다시 죽음에 직면했다. 세계 최고의 복지를 자랑한다는 미국에서는 입원할 병원이 없었다. 기독교 수양관에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했지만 묘하게 항체가 형성되고 항원은 사라졌다. 삶과 죽음이 늘 함께 있다. 죽음의 냄새로 인해 삶이 더더욱 고귀하다. 미국 도시 한 복판의 묘지처럼.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처절한 영혼의 진통은 육체적 고통으로 인한 신음 이상의 죽음의 절규이다. 그 소리를 듣는다. 부활의 확신 없이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생과 사의 경계를 넘고 협곡을 드나든다. 혹자는 교회를 병원이요 공중 목욕탕이라 부른다. 때 많은 사람들이 훈장 떼고, 제복 벗고, 가면 벗고 목욕하는 곳이다. 영혼의 질병을 안고 오는 병원이다. 너의 고름을 보고 지저분하다고 하는가? 나는 배설 주머니 차고 방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이다. 너의 문둥병이 눈에 거슬리는가? 나는 당뇨가 낫기를 기다리는 환자이다. 상처로 점철된 과거를 안고, 고독과 소외와 상실과 좌절을 딛고, 사선을 넘어, 자비의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는 베데스다 못가의 환자이다. 예수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의원이 쓸데 있다 하셨던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하셨던가? 환자에게 네 병 깨끗이 나아서 교회에 들어오라고 말할 수 없다. 의사도 나도 기약할 수 없는 회복의 시점을 누구인들 강요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자비가 아니면 고칠 수 없는 불치병과 상흔을 가졌는데.

보스톤의 이민 목회에 발이 닿기 전, 한국병원에서의 아픈 경험은 쓰디쓴 죽음 후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내 몸에 인치신 것이리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살아 내기 위해 날마다 죽음을 선택했다. 도처에 죽음의 환영이 넘실대는 코비드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으로 쓰러진 자, 갇힌 자, 눌린 자, 병든 자, 그리고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비전을 그린다. 이들과 함께 걷는 십자가 골짜기에 부활의 능력이 떠오르는 상상을 한다. 윌리엄 브레이크와 함께.

이연승교수는 현재 센트럴신학대학원 교회사 분과장과 보스톤대학교 세계기독교와 선교연구센터 초빙연구원으로 있다. 러시아 세인트 피터스버그 선교사로 사역했고, 현재 보스톤 주님의 교회 선교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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