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호모데우스]를 열독하고 있었다. 마침 펜데믹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고, 유발 하라리의 인텨뷰 기사를 우연히 접할 기회가 있었다. 출처 인용은 불가능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는 시작부터 회중 집회를 강조했고 수 천년간 이를 지켜냈다. 그런데 펜데믹이 시작되자 과학적 지식 앞에 그들은 자진해서 회합을 중단했다. 과학적 지식 앞에 목숨 같았던 전통도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는 말에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공포가 엔데믹으로 넘어가는 시점인 지금, 교회는 다시금 이전 상태를 회복해 가고 있다. 그 상흔이 너무 컸던 탓이라 교회와 신앙에 끼친 부정적인 평가들이 아직도 떠돌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평가들이 정당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정말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교회가 맥 없이 무릎을 꿇은 것일까?

역사를 보면 신앙 공동체가 흔적 없이 사라질 뻔한 위기들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중 하나를 들자면,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한 유대 멸망과 성전 파괴이다. 다윗과 솔로몬 이후로 약 500년 가까이 유대의 모든 남성들은 의무적으로 연 세 차례 성전에 올라와서 한 주간 동안 절기들을 지켰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이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성전은 불태워졌고, 포로들은 사슬에 묶여 이방 땅으로 끌려갔다. 시편들 틈새 사이에서, 그들이 잡혀 갔던 땅에서 불렀던 구슬픈 노래들을 우리는 지금도 만난다. 성전도 레위인도 제사장도 사라졌으니 이젠 그들도, 그들의 종교도 끝이 났다. 멀쩡한 성전이 있었고, 수 천의 제사장들이 살아 있을 때도 속절없이 망했다면, 마르둑(Marduk. 바벨론 사람들의 최고 신)과 그 신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땅에서라면 당연히 소멸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들의 신앙은 더욱 굳건 해졌다. 지나쳐 쓸모가 없을 정도로 선민의식이 고양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신앙생활 방식의 변화가 있었다. 첫째 성전 신앙에서 회당 신앙으로 바뀌었다. 포로 이전에는 성전과 레위인들, 년 3차례 민족적인 절기가 신앙생활의 핵심에 있었다. 하지만 바벨론 땅에서 그들은 다른 형태의 신앙을 발전시켰다. 남정네들이 10명만 모이면 회당을 조직했다. 우리 말로는 ‘당’(堂: 집당)이라서 장소가 연상되지만 헬라어 ‘쉬나고게’(함께 모이다)는 ‘모임’이다. 회당마다 토라가 있어서 파괴된 성전을 대신했다. 매주 안식일이 되면 어린 자식들을 회당으로 데려왔고, 가장들이 돌아가면서 말씀을 읽고 강론하며 삶에 적용해 갔다. 대형 집회에서 개인은 전체를 이루는 잉여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그룹에서는 모든 이들이 기여자다. 각자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 서야 했고 적용하며 서로를 통해서 권면을 받았다. 70년의 세월이 지났을 때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더 이상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 글리슨 아쳐(Gleason L. Archer) 박사는 ‘포로 후기의 예언서나 역사서, 그 어디에도 우상숭배를 책망한 적이 없다. 우상숭배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구약총론], 김정우 역, 393). 모세 이후 천년이 넘도록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웅장한 성전과 전문사제들, 온갖 형태의 제사들,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말씀의 종들도,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이적의 종들도, 그 끈질김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우상숭배는 질기디질긴 길가 잡초들보다 더 했다. 하지만 회당 예배의 70년 세월이 그들 마음의 우상들을 쥐 잡듯 잡아 죽였다. 각자가 말씀 앞에 섰기 때문이다.

 두번째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가 회복되었다. 모세 오경을 비롯하여 구약의 대다수 책들이 바벨론 포로 중, 이후에 지금의 형태로 집성되었다(대하 36:23). 모세 이후 사울의 등장까지 약 400년의 사사기가 포로기에 완성되었다(삿 18:30). 또 이 시기에 개인이 말씀을 소장하고 묵상했다.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집을 읽다가 포로 생활이 70년만에 끝날 것을 깨닫는다(단 9:2). 그는 금식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했다. 신앙은 각자가 말씀 앞에 서는 것인데 이방 땅에 끌려가서야 비로소 그들은 그렇게 했다. 말씀이 임하면 회개가 일어나고, 회개가 상달되면 하나님의 손이 움직인다.

성전의 영광이 한 줌 재로 남고, 꼿꼿하게 서야 할 허리들이 포로 된 땅에서 노역으로 휘어진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능력의 말씀 앞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프고 힘든 긴 시간이었지만, 가치는 있었다. 그들의 역사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파 못 견뎌서 죽은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산 자들은 대다수 더 강해졌노라고. 

교회가 다시 이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이전 보다 더욱 든든해 졌다는 기쁜 소식들도 들린다. 내가 아는 한, 그런 교회들은 위에서 말한 두 가지에 힘쓴 결과였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어쩌면 펜데믹보다 험할 종말의 때에 앞서 당신의 교회가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 제시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유발 하라리의 패배 선언은 성급했다. 과정을 결론으로 본 것이 그의 우(愚)였다.   

박영호목사는 센트럴신학대학원 목회분과 겸임강사이며, 워싱턴한인침례교회(MD) 담임목사이다. 저서로는 [팀 켈러와 복음에 빠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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